요동치는 마음 아래
너무 많은 이야기를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하는 일은 위험할 수 있다.
그동안 나는 이러한 위험을 은유라는 인간의 좋은 발명을 통해 피할 수 있었는데
그런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증폭되고 세상의 여러 대상들로 전이되는 나의 감정들이
걷잡을 수 없을 때가 많았다. 이를테면 어제는 귀엽게만 보이던 풀꽃 하나가 내게 은유되고 나서는
바라보기만 해도 그때의 감정을 가져오는 원인이 되고 마는 것이다.
글을 자주 쓰던 당시의 나에게, 상담사는 내게 감정에 대한 일기를 쓰라고 권했다.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떻게 느꼈는지. 나는 그런 글이 지루하고 무가치하다고 느꼈다.
슬플 때 '나 슬퍼' 라고 말하는 건 다분히 유아적이고, 내가 느끼는 감정이 제대로 전달될 수 있으려면
직접 쓰는 것 보다는 여러 층위를 거쳐 전달될 때 더욱 원래의 감정에 근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느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시의 나는 글을 쓰면서 한편으로는 나를 찾아줄 사람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이해해 줄 사람이 나타날 것이라고 믿고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확실해지는 것은 그런 사람은 평생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당신에 대해 모르는 만큼 나에 대해 당신도 모르는 것이 당연하듯이.
오늘 나는 슬펐다. 몇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호흡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아직 다 낫지 못했다는 것에 당황했고 어쩌면 이것이 끝나지 않을 고통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두려웠다.
마음이 마구 요동치고 좋은 마음으로 많은 걸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다. 세상과 척을 지고 마음 편히 살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글을 쓰면 파도치는 바다 위를 바라보는 등대처럼 단단해질 수 있을까 해서 키보드 앞에 앉았다.
요동치는 마음 아래 대체 무엇이 아직까지 남아서 나를 슬프게 만드는 것일까? 어쩌면 나는 평생 고장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만 하는 걸까? 고장난 마음이 다른 사람들을 다치게 할 수도 있는 걸까?
생각이 길어질수록 밤이 깊어질 것이다. 내일은 친구들을 대접하기 위해 식재료를 조금 주문했다. 처음 해보는 레시피이고 나도 먹어본 적 없는 메뉴라 조금 걱정이 된다. 내일 일어나면 미뤄둔 설거지를 할 것이고 날이 좋다면 빨래를 돌릴 것이다. 오후에는 토마토소스와 치즈를 조금 사고 여유가 있다면 꽃도 한 송이 사올 수 있으면 좋겠다. 책상을 돌려 자리를 만들고 재료 손질을 시작해야지. 내일이 잘 마무리되면 다음 주는 열심히 공부할 차례이다. 사람들과 조금 멀어질 수 있을 것 같다. 상처에 바람이 잘 통하게 두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