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5)
-
요동치는 마음 아래
너무 많은 이야기를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하는 일은 위험할 수 있다. 그동안 나는 이러한 위험을 은유라는 인간의 좋은 발명을 통해 피할 수 있었는데 그런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증폭되고 세상의 여러 대상들로 전이되는 나의 감정들이 걷잡을 수 없을 때가 많았다. 이를테면 어제는 귀엽게만 보이던 풀꽃 하나가 내게 은유되고 나서는 바라보기만 해도 그때의 감정을 가져오는 원인이 되고 마는 것이다. 글을 자주 쓰던 당시의 나에게, 상담사는 내게 감정에 대한 일기를 쓰라고 권했다.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떻게 느꼈는지. 나는 그런 글이 지루하고 무가치하다고 느꼈다. 슬플 때 '나 슬퍼' 라고 말하는 건 다분히 유아적이고, 내가 느끼는 감정이 제대로 전달될 수 있으려면 직접 쓰는 것 보다는 여러 층위를 거..
2024.04.07 -
보내 드립니다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2023.08.18 -
최적화 (1)
이 안에 있는 모든 컴퓨터들은 아주아주 느리고 고물이다. 그도 그럴 것이 10년 전에나 쓰던 여우와늑대컴퓨터, 삼보컴퓨터 이런 걸로 하루 10시간씩 주 5일 쉬지도 않고 돌아가다 보면 자연스레 고물이 되겠거니 한다. 컴퓨터란 가끔 참 알 수 없는게 기계이긴 한데 딱히 무슨 유지보수를 해 줘야하는지도 모르겠고, 유지보수가 필요한 컨디션 또는 시간이 도래하는지도 모르겠는데 꼭 그걸 체감할 때면 걷잡을 수 없이 상태가 나빠져 있고는 한다. 오늘도 컴퓨터가 말썽이었다. 디스크 조각 모음과 최적화를 한 번씩 돌려 보고 필요하지 않을 것 같은 파일들을 깔끔하게 삭제했다. 작년에 정보처리기능사 공부를 하면서 배운 바에 의하면 ‘삭제’라는 행위는 사실 저장되어 있는 데이터를 ’0‘으로 덮어씌우는 것이라는 사실을 배우고..
2023.08.11 -
바닥 짚기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다’ 라는 말이 있다. 나는 ‘가라앉는 것에는 부레가 있다’는 말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인간에게는 날개와 부레, 두 가지가 모두 없다. 그러므로 개인의 추락— 과업의 실패, 사랑으로부터의 소외, 관계의 단절로 대표되는— 은 당사자에게 혼란스럽고 당혹스러운 상태이다. 이런 추락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의 상호작용으로 일어나는 일이므로 다분히 외부적이다. 그러나 신경증적 우울감과 공황장애, 자기비하와 자책 등은 자신 스스로와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발생하므로 내부적이다. 이것은 날개와 부레가 실제로 동물 개체에서 위치하는 곳과 동일하다. 신경증적으로 우울한 상태에 있을 때, 어떤 인간은 오히려 그 감정을 더욱 강화하고 심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나의 개인적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이는 ..
2023.05.24 -
유가
나의 증조할머니인 조성수 여사는 유가를 아주 좋아했다. 조성수 여사의 증손자인 나도 그러했다. 유가는 프랑스 국기같은 빨강, 파랑 그리고 흰색으로 이루어진 비닐 포장지에 포장된 캬라멜 같은 과자다. 유가는 탈지분유와 물엿과 설탕을 섞어 만들었다고 한다. 나의 기억 속 할머니의 첫 모습처럼 유가는 하얗고 조금 주름이 졌다. 할머니는 나를 유가처럼 좋아하셨다. 아니면 유가를 나처럼 좋아하셨다고 쓸 수도 있다. 할머니는 유가처럼 일본에서 왔다. 할머니는 유가처럼 일본어로 된 이름이 있다. 유가는 우리 할머니처럼 전쟁과 함께 태어났다. 유가는 우리 할머니처럼 이제는 잘 볼 수 없다. 어느 명절에 나는 할머니가 유가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까만 비닐봉투에 유가를 사 들고 갔을 때의 할머니의 표정을 기억한다..
2023.04.28